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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in 뉴스] 과학자들은 반 고흐를 좋아해

이영완 ywlee@chosun.com
입력 : 2006.12.25 21:58 / 수정 : 2006.12.26 09:44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2/25/2006122500581.html
[사이언스 in 뉴스] 과학자들은 반 고흐를 좋아해

연말연시를 맞아 명화들이 잇달아 우리나라를 찾고 있다. 예술의전당에서는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전이 열리고 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그린 것일까, 또 왜 그런 표현을 한 것일까. 과학자들도 궁금하기는 매 한가지. 과학의 눈으로 보면 명화에도 과학이 들어 있다.

◆천문학자가 밝혀낸 ‘별이 빛난 때’

과학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다. 그의 작품에는 다른 화가와 달리 해와 달, 별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다 보니 천문학자 중에는 고흐의 작품에 나타난 별이 무엇인지, 어느 시점에 나타난 별을 그린 것인지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미 사우스웨스트 텍사스주립대의 도널드 올슨 교수다. 그는 2000년 고흐가 그린 ‘한밤의 하얀 집’의 배경인 프랑스 파리 서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찾아 마을을 샅샅이 뒤진 끝에 그림 속의 집을 찾아냈다. 그리고 며칠 밤을 관찰한 끝에 그림에 나오는 커다란 별이 금성이란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한 결과 고흐는 1890년 6월 16일 오후 7시쯤 떠오른 금성을 그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03년 올슨 교수는 같은 방법으로 고흐가 그린 한 그림에 나오는 둥근 천체가 해인지 아니면 달인지를 분석했다. 이 그림은 때로는 ‘월출(月出)’로, 때론 ‘일출(日出)’로 불릴 만큼 정체가 불분명했다. 천체가 걸린 절벽의 위치와 고흐가 그림을 동생에게 보낸 시기 등을 분석한 결과 이 그림은 1889년 7월 13일 밤 9시8분에 떠오른 보름달을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즉 그림의 제목은 ‘월출’인 것이다.

▲ 고흐와 마그리트의 그림은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고흐작(作) ‘별이 빛나는 밤’(왼쪽)의 소용돌이는 난류(亂流)를 표현하는 물리방정식대로 그려졌다고 분석됐으며, 마그리트의‘유리의 집’(오른쪽)은 빛의 속도로 달리는 물체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길이가 짧아진다는 특수상대성을 보여준다고 해석되고 있다.
◆소용돌이에 나타난 난류 방정식

고흐는 정신 착란에 시달리다 자살로 인생을 마감했다. 과학자들은 그림에서 고흐의 고통을 찾아냈다. 지난 7월 멕시코국립대의 호세 후이스 아라곤 박사는 ‘네이처’지(誌)에 고흐의 그림에 물리학 방정식이 숨겨져 있다고 발표했다. ‘별이 빛나는 밤’과 같이 고흐가 자살 직전 그린 그림에 유독 많이 등장하는 소용돌이가 기체나 액체가 불규칙하게 흐르는 난류(亂流)를 설명하는 콜모고로프 방정식에 부합한다는 것. 이 방정식은 거리가 떨어진 두 군데 난류의 속도가 같을 확률은 ‘1을 거리의 거듭제곱으로 나눈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그림에 나타난 소용돌이의 밝기도 같은 법칙을 따르고 있었다. 연구팀은 고흐가 정신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그린 소용돌이는 난류와 상관이 없음을 들어 고흐의 정신 착란이 난류를 정확히 묘사하게 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했다. 의학자들도 고흐의 병력에 주목하고 있다. 고흐는 그림에 유독 노란 색을 많이 썼는데 이는 시신경이 손상돼 사물을 노랗게 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았기 때문이란 것. 의학자들은 고흐가 즐긴 압생트라는 술이 원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약쑥을 증류해 만든 이 술에는 시신경을 손상시키는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사과를 얼굴이라 보는 이유

중절모를 쓴 신사의 뒷모습이 갑자기 앞 얼굴로 변한다. 초현실주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가 그린 ‘유리의 집’이다. 물리학자들은 이 그림으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설명한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어떤 물체가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추고 길이가 없어진다. 실제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에서 기차를 빛의 3분의 2 속도로 달리게 하면 기차가 정지할 때보다 짧게 보인다고 한다. 즉 마그리트의 그림은 빛의 속도로 달리면서 두께(길이)가 없어져 앞과 뒤과 합쳐지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뇌과학자들은 마그리트의 그림이 인간이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얼굴이 흐릿한 사진을 보고서도 사람이라고 느낀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파완 신하 교수팀은 2004년 4월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아무리 얼굴이 흐릿해도 상반신 위에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선명한 얼굴 사진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인식하는 뇌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얼굴이 사과로 바뀐 마그리트의 ‘관념’을 보고도 뇌는 똑같이 반응했다. 즉 사람은 얼굴이 선명하지 않아도 전후 맥락을 관찰해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과연 고흐와 마그리트는 직관적으로 과학을 파악한 천재였을까, 아니면 환각 속에서 우연히 과학과 마주친 것일까.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은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이야기’ 특별전을 내년 2월 22일까지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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