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반 고흐

2008/06/18 (22:32) from 211.183.152.29' of 211.183.152.29' Article Number :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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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현재 거주지는 날조된 것… 전시행정의 표본"
"이중섭 현재 거주지는 날조된 것… 전시행정의 표본"
고방에서 굴묵 통하는 출입문 있을리 없어

2008년 06월 18일 (수)  제민일보  


 
제주도 민가는 뼈댓집이다

제주도 민가는 우리나라의 여러 민가들 가운데서도 가장 뼈대가 있는 집이다.

육지의 집들은 기둥과 보를 간단하게 걸어가면서 방들을 덧붙여가는 결합방식인데, 제주도 집들은 뼈대를 먼저 만들어놓고 나서 각 방을 나누어가는 분할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제주도 집을 밖으로 증축한다는 것은 구조역학상 문제가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송태주네 집은 외거리 3칸집이었다

제주도 민가는 한일자 겹집을 기본으로 한다. 틀을 먼저 짜놓고 평면을 분할해가는 방식으로 지었기 때문에 공간을 늘리기 위해서는 따로 별채를 지을 수밖에 없다.

마당을 중심으로 안거리, 밖거리, 목거리 등을 ㅁ자 형태로 배치해나가는데, 안거리 한 채와 거기에 따르는 곁채로 이루어진 집을 '외거리(외커리)집'이라고 부른다.

이중섭이 1951년에 살았던 서귀동 송태주네 집도 간잡이가 제주민가의 전통방식인 겹집으로서 나중에 밖거리가 지어진 외거리집이다.

서귀포시가 복원한 현재의 이중섭거주지 방과 부엌이 외거리집은 간살의 내용에 따라 3칸집, 4칸집 등으로 나뉜다. 3칸집 안에 구들이 하나만 있으면 '작은방 없는 3칸집'이 되고, 구들이 두개 있으면 '작은방 있는 3칸집'이 된다.

송태주네 집은 상방을 가운데 두고 구들이 양쪽에 일자형으로 하나씩 있다. (집 바깥에서 집 안을 들여다본다고 가정했을 경우) 집 왼쪽에는 '작은구들'과 '정지'가 배치되어있고, 집 오른쪽에는 '큰구들'과 '굴묵'과 '고방(고팡)'이 배치되어있다. 따라서 송태주네 집은 작은방이 있는 외거리 3칸집이 된다.

작은방이 있는 외거리 3칸집

이 집의 평면 간살은 전면을 셋으로 나눈다. 집 왼쪽에는 '정지'와 '작은구들'이 놓인다. 정지의 위치는 지관(地官)이 복거(卜居)하는 데에 따라 정해지므로 작은구들보다 앞에 놓이기도 하고 뒤에 놓이기도 한다. (※ 송태주네 집은 정지가 작은구들보다 뒤에 놓여있다.)

집 가운데에는 앞으로 '퇴'가 놓이고 뒤로 '상방'이 놓인다. 집 오른쪽에는 반 칸 크기의 '퇴'가 맨 앞에 놓이고, 한 칸 크기의 '큰 구들'과 '굴묵'이 중간에 놓이며, '고방'이 맨 뒤에 놓인다.

정지로 들어가 보자. 여기에는 작은구들이 설치되어있으므로 ㄴ자 평면을 이룬다. '화덕'은 상방과 반대쪽에 놓인다. 작은구들이 정지보다 앞에 놓인 송태주네 집은 화덕이 외측 벽의 뒤쪽에 붙여서 설치되기 마련이다.

상방 쪽에 붙어있는 작은구들 옆 공간은 정지로 이용되는데, 작은구들에 불 땔 필요가 있을 때에는 이곳을 화덕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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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큰구들을 난방하려면 집밖으로 나가 큰구들의 '굴묵'에 가서 불을 지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 작은구들은 정지에서 직접 불을 땔 수 있어 편리하다.

작은구들이 정지보다 뒤에 있는 집의 경우에는 땔감을 상방 쪽 벽의 앞쪽 구석에 놓는다. 정지의 왼쪽 벽과 앞 벽이 이루는 모서리에 방을 만들어 연료저장창고로 쓰기도 하는데 이것을 '고랑캐'라고 부른다. 물항은 뒷문 옆에 놓고 그 옆에 '살레'를 설치한다. |

작은구들은 정방형이다. 큰구들보다 작고, 마감은 큰구들에 비해 거칠다. 바닥에 자리를 깔기도 한다.

'퇴'는 상방 앞과 구들 앞에 설치된다. 처마 끝 서까래 앞에는 '풍채'를 단다. 비바람이 칠 때는 내려서 비바람을 막고, 볕이 날 때는 올려서 상방에 땡볕 비추는 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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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방'은 집의 중앙에 놓는다. 상방 앞쪽에는 주출입문인 '대문'이 있고, 대문에서 큰구들 쪽으로는 '호령창'을 둔다. 상방 뒤편에는 '안뒤'로 출입하는 '뒷문'이 있고, 상방 왼편으로는 작은구들로 출입하는 '작은구들샛문'과 정지로 출입하는 '정지샛문'이 있으며, 상방 오른편에는 고방으로 출입하는 '고방문'과 큰구들로 출입하는 '큰구들샛문'이 있다.

'큰구들'은 정사각형이다. 출입은 상방에 붙어있는 큰구들샛문으로 한다. 퇴에 설치된 창문은 채광 · 통풍 · 조망용으로 쓰인다.

'고방'은 직사각형이다. 출입은 상방에 붙어있는 고방문으로 한다. 용도가 물품보관창고이기 때문에 바깥으로는 문을 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뒷벽에 봉창을 설치하고 옆벽에 쌍여닫이문을 설치한 경우도 있다. 아마도 나중에 용도가 변경된 경우일 것이다. 곡식을 담는 항아리는 뒷벽과 샛벽(굴묵과 큰구들이 있는 쪽 벽)에 붙여 양쪽으로 놓고 가운데는 통로로 사용한다. 고방 바닥은 마루로 되어있다. 흙바닥으로 했다가 나중에 집안 형편이 나아지면 마루를 까는 경우도 있었다.

'굴묵'은 큰구들에 난방을 하기 위한 공간이다. 연기가 집안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큰구들이나 고방으로 통하는 문은 아예 만들지를 않았다.

땔감은 입구 쪽에 놓고 불 땐 재는 고방 쪽 벽에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닭똥과 섞어 거름으로 썼다. 난방을 하지 않는 여름철에는 농기구 따위를 보관하는 창고로도 썼다.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방은 송태주네 고방이었다

월남하자마자 해군에 입대, 임시사령부가 있는 제주시에 와있던 이영진은 삼촌(이중섭)이 서귀포에 와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서귀포 주재 정훈분실로 전임발령을 신청했고, 재가가 내려지자 서귀포에 와서 몇 달을 살았다고 한다. 고은은 이영진과의 인터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숙부는 '시멘트 포대 종이를 깔고 있던 그 방'에서 자주 도쿄얘기를 했습니다. 부산에도 좋은 페인트가 없으니 일본에 건너가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도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6·25 동란 덕분에 전후 경제가 아주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이영진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이중섭 가족은 송태주 네 고방에서 '시멘트 포대 종이'를 깔고 생활했던 것이다. 이 이중섭 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회에 계속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만 '그 때에도 지금 서귀포시가 복원한 것처럼 고방에서 굴묵으로 통하는 출입문이 나있었을 리 없다는 점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굴묵은 지금으로 말하면 보일러실이다. 고방과의 사이에 출입문을 내고 굴묵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전부 다 고방으로 들어갈 텐데 어떻게 출입문을 낼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지은 지 3년밖에 안 된 새 집인데 이중섭 가족을 위해서 문을 만들어주었을 리 없다.

또 이중섭네가 이 굴묵을 부엌으로 사용했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여기에 설치된 아궁이는 큰구들에 불을 때는 아궁이인데 이중섭네가 밥 해 먹으려고 이 아궁이에다 불을 땠다가는 한 여름철에도 주인 네가 사는 큰구들이 뜨거워질 것 아닌가. 낭패가 난다.

이중섭네는 어디서 밥을 해먹었을까? 틀림없이 집 바깥에 따로 불 피우는 곳(독립된 화덕)을 만들어 겡이를 끓였을 것이다. 지금 이중섭거주지의 '이중섭네 부엌'은 날조된 것으로서 이것을 서귀포시가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는 것은 전시행정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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