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반 고흐

2005/10/26 (09:46) from 211.218.51.110' of 211.218.51.110' Article Number :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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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로 화장하고 고갱을 먹는다

名畵열풍 기업들 브랜드 경쟁 “매출 급증”… 건물 전체를 한장의 그림으로도

‘고흐를 둘러메고 클림트를 신는다?’

어느 틈엔가 명화(名畵)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미술관을 찾거나 교과서에서만 감상할 수 있었던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이제, 눈만 돌리면 곳곳에서 보인다. 이 시대 또 하나의 문화 트렌드다. 기업들은 앞다퉈 ‘명화 마케팅’을 시도한다. 제품의 이미지에 맞게 용기나 포장지에 그림을 입히고 있다. 저가(低價) 화장품업체 ‘더 페이스샵’. 지난 8월 아르생뜨라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화장품 용기에 빈센트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보리밭’(1889년 작품)을 새겼다. 제품의 기본개념을 ‘피부의 명작’으로 잡으면서 고흐 그림의 강렬한 터치와 고급스런 이미지를 빌려온 것. 이 회사 조혜영 대리는 “저가(低價) 화장품에 고급 명화를 접목함으로써 제품의 이미지를 높여 3개월 만에 매출이 30% 늘었다”고 했다.

롯데제과는 과자 ‘하비스트 검은깨’ 포장지에 밀레의 ‘만종’, 고갱의 ‘브루타뉴의 수확’ 등 9종의 명화를 입혔다. 이 업체 관계자는 “대형 할인매장이 주요 유통망으로 부상되면서 소비자들이 즐기며 쇼핑을 한다는 데 착안했다”고 했다.

현대카드도 최근 카드 전면에 보티첼리, 라파엘로 등의 그림을 입힌 ‘갤러리 카드’ 6종을 내놓았다. 이 업체 관계자 역시 “유명 작가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문화 욕구를 채우고 디자인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은 확실히 삶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한 발짝 떨어져서 경외감을 갖고 들여다보던 작품들을 일상용품 속에서 만나는 게 낯설지 않다. 지난 봄에는 명화 1200여 점을 신발과 핸드백, 벨트 등 가죽제품에 프린트한 패션 브랜드 ‘아이콘’이 한국에 들어왔다. 백영빈(51) 대표는 “수세기 동안 사랑받아온 명화를 패션 소품을 통해 직접 몸에 지닌다는 매력 때문에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면서 “이전 같으면 상상조차 못하던 일”이라고 했다.

인터넷에서는 명화 전문 쇼핑몰이 인기를 끌고 있다. 2003년 7월 문을 연 ‘명화몰’. 명화를 테마로 한 갖가지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이 업체는 최근 명화열풍에 힘입어 매출이 크게 늘었다.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는 단연 고흐. 임영원 사장은 “고흐만 갖고도 장사가 된다”며 “세계적으로 고흐 산업의 시장규모는 약 4조원에 이르며 점차 늘어가는 추세”라고 했다. 대표작인 ‘밤의 카페테라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이 베스트3이며, 특히 10대 후반~30대 중반의 여성들이 열광한다고 했다. 개별작품으로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제일 인기를 모은다.

명화 열풍은 상품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심에선 아예 건물 전체가 하나의 그림인 곳도 볼 수 있다. 리노베이션 중인 신세계 백화점 본점. 외벽을 덧씌운 알루미늄 보호벽에 르네 마그리트의 ‘겨울비’를 프린트해 입혔다. 중절모를 쓴 신사들이 비처럼 흘러내리는 풍경이 삭막한 도심 속에서 멋스럽게 빛난다.

뿐만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명화로 감성교육을 하고, 관공서나 병원에도 명화를 전시해 정서적 안정감을 심어주고 있다. 서울 개포초등학교는 지난 5월 본관 2층에 ‘어린이 화랑’을 열었다. 마네와 르느와르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부터 피카소, 샤갈에 이중섭, 박수근 같은 우리 화가들의 그림까지, 모두 33점이 전시돼 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이 학교 김홍태 교장이 프랑스 등지를 여행하면서 모은 복제품들이라고 했다.

곳곳에서 확인되는 명화 열풍. 왜일까.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는 “세계화·정보화로 전 세계 모든 그림을 자기 미니 홈피에 담을 수 있는 시대에 디지털 기술이 예술과 인간과의 거리를 가깝게 만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허윤희기자 ostina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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